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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이어진 개발자의 자존심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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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장주 2019. 2. 24.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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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동기의 파국

1주일 차이를 두고 같이 입사한 그리스계 아저씨가 있습니다. 편의상 이 입사 동기는 J라 부르겠습니다. 8개월 동안 같이 일한 입사 동기가 맞이한 파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ull Request와 리뷰

보통 수정 사항을 저장소에 저장한 후 Pull Request(PR)를 합니다. PR을 할 때 꼭 리뷰어를 선정해야하도록 설정이 되어있습니다. 보통은 팀내 가장 경력이 많은 P가 리뷰를 합니다. P는 본인도 처리해야할 것들이 많지만, 시간 쪼개서 열심히 리뷰를 해줍니다. 


물론 그의 리뷰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한 번은 제가 만든 PR에 대해 변수 선언에 대한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변수이기에 미리 앞에서 하지 말고 if 문 안에서만 하도록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if 문이 여러 곳에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앞에서 선언해 놓은 것이었거든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P는 뒤에서 변수들이 사용되는 모든 부분을 미처 못 봐서 미안하다며 저의 코드를 수용하고 merge를 했습니다. 


이렇게 PR 생성자와 리뷰어 간의 코멘트가 생성될 때마다 이메일이 발송됩니다. 보통은 담당자와의 2-3회 의견 교환이 있고 PR이 마무리 됩니다. 따라서 이메일도 2-3회 정도 발송이 됩니다


이런 리뷰 시스템이 사실 싸우기 딱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긴 합니다. 보통은 받은 리뷰의 80%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나머지 20% 정도는 일단 이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조금 빈정이 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리뷰어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위의 예에서 처럼 싸우지 않고 합의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금요일 오후의 키배

P는 사번이 6번입니다. 11년 가까이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아 일주일 중 4일을 집에서 근무합니다. 그래서 J와 P는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전화, 메신저, git 댓글이 주된 소통 방법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입사 동기인 J는 PR을 만들고 P를 리뷰어로 선정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생성된 이 PR은 10개가 넘는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 이메일을 읽어보니 HashMap과 Set에 대해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J는 HashMap<T, T>을 사용하고 있었고, P는 그럴거면 Set<T>를 쓰는게 맞다며 서로 배틀을 하고 있었습니다. 


git 댓글을 읽고 있는데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요청 사항을 수정한 커밋 알림 이메일이었습니다. git 코멘트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었습니다. "fu"



그 이메일 이후 더 이상의 이메일은 없었습니다. 월요일에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내의 반응은 


그런다고 잘리겠어?


그런데 말입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쯤 후 P가 오더니 제 등뒤에 있는 J에게 잠깐 이야기를 하자며 데려 갔습니다. 이때만해도 저는 P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한 20분 후 J가 돌아왔습니다.


They let me go. This place sucks!


그리곤 짐을 싸서 나갔습니다. 


설마 설마 했지만 막상 해고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뭐라고 말이 안나오더군요. 10분 후 매니저가 팀 미팅을 소집합니다. 


J is no longer with us. It is not a mutual agreement.


그 이후 P가 저와 이야기를 하자고 불렀습니다. 시카고 사무실에 개발자는 저랑 J, P 이렇게 셋이거든요. 대화의 목적은 저를 안심시켜주려는 의도 반 J가 해고된 이유 설명 반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둘 사이의 리뷰를 봤는데, 서로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J의 fu는 옳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고 그게 해고의 이유인가 물었습니다. P에 따르면 J는 업무 능력이 기대 이하였다는 군요. Jira 티켓도 금방 금방 처리하길래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봅니다. 티켓을 빨리 처리할 수 있던 이유는 사실은 P가 도와줘서 그랬다는군요.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저에 비해 동종 업계에서 이직한 J가 오히려 적응이 늦고 업무 처리 속도가 더 느렸다고 합니다.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의 태도가 해고의 기폭제 역할을 했나봅니다. 


저랑은 같이 일할 일이 없어서 사적으로는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일할 때는 달랐나봅니다. 한국 음식도 좋아하고, 올해가 돼지의 해라 자기의 해라며 좋아하던 48세의 개발자 J는 그렇게 8개월 만에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리해고 보다는 덜 했지만 옆자리 앉아 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해고 당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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