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 속의 아이가 때 되면 나오겠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예정일을 넘기면 여러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유도 분만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인덕션 레인지를 참 좋아하는데 유도 분만도 인덕션이라 부른다며 깜놀했습니다.
6월 8일 아침 8시에 예약을 하고 병원에 갑니다. 시계를 보니 7시 50분 이군요. 오늘도 그렇듯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수속을 합니다. 세 아이 모두 제발로 걸어가서 낳는군요. 지난 번에는 저녁이어서 그런지 한가했는데, 오늘은 의사들이 잔뜩 모여서 회의를 하는 가 봅니다. 아침에 확인 전화 하면서 들었는데 유도 분만 예약이 4개라는군요.
화면에 보이는 커다란 텔레비전에는 각 방에 있는 산모들과 태아의 심박, 수축 정도, 혈압 그래프를 다 모아서 보여줍니다. 근데 나중에 아내 혈압 낮다고 삑삑 불 들어오는데 간호사가 안 오는 걸 보면 누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촉진제를 맞고 누웠습니다. 촉진제 맞기 전까지는 배가 별로 안 아팠는데 맞으니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고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알뜰신잡 보여달라고 합니다. 깔깔 거리며 웃다가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어제 잠을 설쳐서 많이 못 잤다고합니다. 걱정도 되고 남편이 옆에서 코도 골고 ㅠ.ㅜ
약이 잔뜩 있는 찬장 옆으로 가니 기념품 모자가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저기에 발도장 찍어서 기념품으로 줍니다.
40분 정도 자고 일어나 이번에는 마리텔을 보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촉진제 맞은지 3시간 쯤 지났을 때 통증이 많이 심해졌습니다. 양수 터뜨릴까 하며 의사가 물어보길래 그러기로 했습니다. 저렇게 생긴 막대기 같은 걸로 콕 찔러서 양수를 터트리나봅니다.
양수를 터뜨리기 전에 아내가 묻습니다.
아내: 근데 무통 주사 에피듀럴은 양수 터트리고 맞나요?
의사: 고갱님, 맞고 싶은 때 맞으시면 돼요.
이번이 세번째 출산이지만 하도 띄엄띄엄 낳는 바람에 다 까먹었습니다. 아내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는데 마취의사가 들어옵니다.
마취의: 고갱님 따끔하실게요. 힘 빼시고 어깨 축 늘어뜨리실게요. (쿡)
아내: (움찔) 아야
마취의: 고갱님 움직이시면 큰일나세요.
아내: ㅠ.ㅠ
휴대용 게임기 같이 생긴 기계가 에피듀럴 넣어주는 기계입니다. 마취의가 열쇠로 열어서 잠금 장치를 풀고 작동을 시키는 걸 보면 위험한 물건인가 봅니다.
등에 주사 바늘을 꼽고 관을 연결해서 위로 뺍니다. 거기에 에피듀럴 기계에서 나온 관을 연결해 에피듀럴을 넣어줍니다. 많이 아프면 넣는 양을 산모가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진통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다리의 감각도 점점 무뎌진다고 합니다. 살짝 꼬집어 봤는데 하나도 안 아프다는군요. 두 아이 모두 에피듀럴 맞고 낳았는데 안 아픈건 좋은데 감각이 없어서 힘주기 힘들다고 합니다.
8시에 왔는데 벌써 2시가 다 되어갑니다. 병원 근처 한인 마트에서 밥 먹고 오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아내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가서 간단하게 짬뽕 시켜먹었습니다. 주문한 짬뽕이 나올즈음 아내에게 문자가 옵니다.
나 양수 터졌어
마취가 되어서 아내도 몰랐답니다. 짬뽕을 흡입하다 시피하여 먹어치우고 다시 차에 탑니다.
바빠 죽겠는데 빨간 신호는 참 오래도 켜있네요.
병원 전경입니다. 길가에는 새로 지은 병동은 기존 병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만실은 기존 병동에 있고, 회복실은 새로운 병동에 있습니다. 나름 이 동네에서는 높은 건물에 속하는 지라 경치가 좋습니다.
겨우 주차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습니다. 셋 중에 가장 느긋한 녀석인가봅니다. 아내 옆에 있는 기계에서 주기적으로 삑삑 소리가 나서 깜놀했습니다. 소리의 근원은 태아와 아내의 상태를 측정하는 기계였습니다. 그런데 왜 소리가 나는지는 모르겠더군요. 간호사를 불렀습니다.
아내: 뭐가 문제인가요? 아이나 저한테 문제 있나요?
간호사: 고갱님, 이 기계에 종이가 없대요. 이 기계에서 50여가지의 다른 삑삑 소리가 있는데 저희도 짜증나요.
간호사가 나간지 몇 분도 채 안 되어서 똑 삑삑 소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좀 주기도 짧고, 화면에 빨간 불도 들어옵니다.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렀습니다.
아내: 뭐가 문제 있나요?
간호사: 고갱님 혈압이 낮으세요. 괜찮으세요?
주기적으로 기계가 산모의 혈압을 측정합니다. 아까 찍어놓은 사진을 살펴보니 혈압이 106/64 정도였는데 지금은 86/46이라고 써있네요. 수액을 더 넣어보더니 효과가 없다며 혈압 약을 줍니다. 다행히 곧 혈압이 96/52 정도로 올라왔습니다. 피곤한 아내는 다시 새근 새근 잠이 듭니다.
셋째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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