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실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밤을 설쳐서 피곤했지만, 먹어야 버틸 것 같아서 아침 주문을 했습니다. 아침, 점심겸 저녁 메뉴가 있고, 아침 메뉴는 새벽부터 주문이 가능하고, 점심 저녁 메뉴는 10시경 부터 주문이 가능합니다. 아침은 오믈렛이나 시리얼을 주문 할 수 있습니다. 오믈렛 두 개 시켰는데, 하나만 온 줄 착각할 정도로 작았습니다.
다 먹고 화이트 보드를 보니 목표가 적혀있군요. 중요한 순서대로 아내, 신생아. 목요일 저녁에 왔는데 퇴원은 토요일이군요. 신생아 황달 검사가 생후 24시간이 되어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녁 7시 23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검사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 너무 늦어서 그냥 토요일에 퇴원합니다. 다행히 보험회사에서도 2박 3일까지는 괜찮다고 합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입니다. 시카고 외곽이라 나무들이 많군요. 그냥 시골이네요 ^^;; 서울에서 보기 힘든 물탑도 여기는 시마다 하나씩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났으니 출생 신고를 해야합니다. 우리나라 출생 신고처럼, 부모의 기본 정보를 기입합니다. 우리와 다르게 여기는 인종이 다양하다보니 부모의 인종을 적는 칸이 있습니다.
점심 때 아이들이 왔습니다. 아이들은 목요일 저녁까지는 교당에서 교무님이랑 지내고, 저녁에는 아는 누님 댁에서 잤습니다. 그 누님 자녀들이 저희 애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막내가 아빠 저녁에 아빠를 찾았지만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는 군요. 불쌍한 녀석들. 방문객에게는 VISITOR라고 쓰인 스티커를 줍니다. 형제 자매에게는 "I am the big brother.", "I am the big sister."라고 적힌 스티커를 줍니다. 다음 달이면 만 3세가 되는 둘째는 동생이 마냥 신기한가 봅니다.
둘째: 아빠 이게 움직여
점심 메뉴로는 피자, 버거, 샌드위치, 파스타, 랩을 시킬 수 있습니다. 평소에 한식 먹는 한국 산모들에게 한국 병원에서 한식 메뉴를 제공하듯이, 미국 병원에서 미국 산모들에게는 당연하게 저런 메뉴 제공하나 봅니다.
점심시간이라 아이들 것도 같이 시켜서 먹기로 합니다.
저: 점심 주문 할께요. 햄버거 하나, 치즈버거 하나 하고요. 치즈 피자2개 하고요...
직원: 잠시만요 고갱님. 이미 버거 2개 시키셔서 피자 1개만 시키실 수 있습니다.
보호자 2명 까지만 무료 식사 제공이 되나봅니다. 누님 자녀들에게 제 신용 카드 주면서 맛있는 거 먹으라고 내보냈습니다. 그래봐야 나중에 들어보니 맥도날드 갔답니다. 아마 제 딸이 가자고 했을 겁니다.
저와 아내는 햄버거와 치즈버거를 먹기로 합니다. 거기에 어제 남은 후식(?)으로 미역국! 햄버거는 직화 구이라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햄버거를 좋아했는데요. 한국에서 먹던 양념된 버거가 미국에서 거의 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오늘은 가족, 친구들 뿐만 아니라 병원 관계자도 많이 만났습니다. 모유 수유 전문가, 소아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 사진작가, 각종 검사를 위해 방문한 수 많은 간호사 등 정말 많았습니다.
가장 많이 온 사람은 아내를 담당한 간호사입니다. 다행히도 회복실 바로 앞에 간호사들이 있는 자리라 부르면 바로바로 와줍니다. 주기적으로 와서 아내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봅니다. 미국 산모들은 찬물 잘 마시는지 보통은 간호사가 찬물을 가져다 줍니다. 따뜻한 물 먹고 싶다고 하면 뜨거운 물에 얼음 넣어서 따뜻물을 만들어 줍니다. 침대 시트도 갈아주고, 샤워도 도와주고 정말 아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해줬습니다. 아기가 너무 울면 밖에서 바로 들리기 때문에 바로 들어와서 도와줍니다. 아이를 데려가서 씻겨도 주고, 분유 몇 방울 먹여서 재워도 줍니다.
두 아이 모두 모유 수유를 했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간호사 2명이 와서 아내가 어떻게 모유 수유를 하는지 지켜봤습니다. 사실 간호사 2명이 오기 전에 제가 아내에게 그랬습니다.
저: 얼굴을 푹 파묻은 채로 젖을 빠는데 숨 못쉬지 않을까? 가슴을 눌러서 코 주변에 고간을 만들어줘
아이가 숨을 잘 쉴 수 있게 가슴을 좀 당겨서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했더니 간호사가 이야기 해줍니다.
간호사: 많은 산모들이 아이가 숨을 못 쉴까봐 그렇게 하는데요. 그럼 아이가 젖을 잘 못 빨아요. 그리고 숨을 못 쉬면 아이가 젖을 못 빱니다 걱정 마세요.
전문가가 그렇다니 마음이 놓이긴 합니다.
청력 검사하는 간호사는 정말 많이 왔습니다. 신생아의 머리에 센서를 달고 뇌파를 이용해 청력을 검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울면 안 되니 다시 오고, 모유 수유 중이라 안 되어서 다시 오고. 정말 한 다섯 번은 되돌아 간 것 같습니다. 결국 간호사들이 아이를 신생아실에 데리고 가서 씻기고 분유 줄 때 청력 검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황달 검사 간호사는 다행히 한 번에 검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황달과 유전병 검사를 위해 피를 많이 뽑아갔습니다. 정말 조그맣고 가녀린 발 뒤꿈치에서 피를 짜더군요. 세 명의 아이 중 셋째가 가장 덜 울었습니다. 유일하게 황달 검사도 통과했고요.
사진작가는 병원과 연계된 사진 업체 소속인가봅니다. 출생 기념으로 가족 사진 찍어준다는 군요. 제일 저렴한 것은 CD로 사진을 받는 것이라는데 $100 후반대 였습니다. 초췌한 몰골로 찍은 사진일텐데.. 안 찍기로 합니다.
소아과 의사와 산부인과 의사가 가장 적게 왔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건강해서 사실 많이 볼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아과 의사는 신생아 검사에 대해 설명하고 백신 처방해주고 갔습니다. 다음 날 황달 검사 결과 나오면 또 보기로 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내 상태 진단하고 역시 다음 날 퇴원 전에 보기로 했습니다.
저녁 메뉴는 시카고 세사모에서 만난 부부께서 사다 주셨습니다.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사다 주신다고 해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 나 후라이드 치킨에 양념 따로 먹고 싶어. 그리고 간!
간만 사면 퍽퍽할까봐 순대고 사다 주셨습니다. 아내 덕분에 회덮밥, 치킨, 순대, 간. 제가 다 포식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초밥집 하는 누님이 초밥도 사다 주셔서 야식도 잘 먹었습니다.
5년 전 처음 일리노이에 왔을 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5년 후에 주위의 많은 분들이 이렇게 도와주고 챙겨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분들 덕분에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 덕분에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 먹고 힘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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