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분만하기 위해 촉진제 맞고 한 참을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간호사가 주기적으로 와서 아내 상태 확인하고, 간호사 보다 덜 주기적으로 의사가 와서 아내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병원에 온지 11시간 정도 되었을 때 간호사가 아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제 곧 분만을 시작해도 되겠다고 합니다.
저와 아내만 있던 분만실이 갑자기 분주해집니다.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언제 쓰나 했던 온열기를 간호사가 드디어 작동시킵니다. 온열기 밑에 손을 가져가 보니 따뜻합니다.
아내 말에 따르면 에피듀럴을 맞으면 통증이 없어지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없다보니 힘을 주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지난 분만 때 한 참을 고생하다가 중간부터 거울을 보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거울을 놓고 하기로 했습니다. 10분 정도 후 간호사가 거울을 가져옵니다. 거울을 보며 하는 산모가 별로 없어서 거울이 얼마 없다고 합니다. 거울 옆에는 수술도구가 준비되어 있고 파란 천으로 덮어놨습니다.
한 30분간 힘을 주니 아이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한 번만 더 힘 주면 이마가 보일 것 같습니다. 12시간의 분만 과정 중에 산부인과 의사의 역할은 막판 30분에 집중 됩니다.
의사: 고갱님!!!! 잠시만요. 힘주지 말고 기다리세요.
그리곤 잽싸게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수술 가운, 신발, 장갑을 착용합니다.
의사: 고갱님 한 번 크게 힘 한 번 줘보실게요.
아내가 한 번 힘주니 머리의 절반 이상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힘 줄 때 의사가 머리를 잡고 같이 빼니까 한 번에 쑤욱 아이가 나왔습니다. 병원에 온 지 거의 12시간 만에 셋째가 태어났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간호사는 목에 있는 가래 같은 걸 빼내고 열심히 신생아의 몸을 닦아 줍니다. 의사는 열심히 마무리 준비를 합니다.
의사: 아버님, 탯줄 자르시겠어요?
저: 네!
잘라야 할 탯줄 양 옆을 가위같은 걸로 꽉 집어 놓았습니다. 그 사이를 가위로 자르면 됩니다.
의사: 아버님, 다 쓴 가위는 뒤에 테이블에 놓으실게요.
태반 꺼내고 피 닦느라 의사가 아주 바빠서 가위 받을 여유도 없습니다. 둘째 낳을 때도 똑같은 의사였는데 그 때는 좀 여유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탯줄을 자른 아이는 온열기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간호사가 간단한 처치를 합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 간호사가 아이 눈에 연고를 바르고 간단한 비타민 주사를 하나 놓습니다. 바로 옆에는 몸무게와 키를 잴 수 있는 저울이 있습니다. 아내 배가 작다고 걱정했는데 3.7kg, 53.32cm로 세 명 중 가장 크고 무겁습니다. 배 크기와 태아 크기가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기념품 모자와 병원에서 주는 출생 증명서에 발도장을 꾹꾹 찍습니다. 병원 출생 증명서는 법적인 효력은 없고, 일단 보험회사에 아이를 등록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산모만 채워주던 팔찌였는데, 이제 아빠도 하나 채워줍니다. 출생시간과 일련 번호 같은 게 적힌 팔찌인데 아기도 같은 걸로 하나 채워줍니다. 신생아는 별 일이 없는 한 계속 산모와 함께 지냅니다. 의사나 간호사가 잠시 아이를 데려가고 데려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일련 번호를 확인합니다. 물론 그냥 안 하고 데려가고 오는 간호사고 있지만.
12시간 동안 간호사와 가장 많은 소통을 하게 되는데요. 다행히 3번의 분만 모두 정말 친절하고 경험 많은 간호사가 도와준 것은 행운입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를 때인데 아내를 편하게 해주는게 제일입니다. 분만이 끝나고 약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회복실로 이동합니다.
회복실은 분만실의 절반 크기 정도 됩니다. 11층이고 창문도 크게 있어서 좋은 경치를 바라보면 회복하기 좋습니다. 침대, 보호자용 간이 침대, 탁자, 의자, 옷장, 화장실, 샤워시설이 되어 있어서 보호자와 함께 2박 3일 지내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보통 자연 분만의 경우 보험회사에서 2-3일 정도 병원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줍니다. 더 있어야할 경우 미리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밤 10시 즘 되어서 드디어 저녁을 먹습니다. 저야 중간에 점심도 먹고 왔지만, 아내는 12시간 동안 쫄쫄 굶었습니다. 배고픈데 힘 내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친한 누님이 전화와서 아내에게 뭐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임신 기간 내내 회를 먹고 싶어했는데 못 먹어서 정말 먹고 싶었나봅니다. 초밥집 하는 누님인데 가게 문 닫고 오는 길이라 초밥은 못 만들어주고 대신 회덮밥이라도 먹으라며 사다 주셨습니다. 거기에 교당에서 교무님들이 끓여주신 미역국을 데워 같이 먹었습니다.
회복실 옆에는 간단한 주방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 컵, 빨대, 물, 얼음, 전자렌지가 있습니다.
냉장고에는 우유, 오렌지 주스, 사과 주스가 있는데 맘껏 먹어도 됩니다.
서랍을 열어보면 각종 차와 과자,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이 젖주고 11시 경 잠을 잤습니다. 밤새 푹 잘 수 있는 날이 어제로 끝났습니다. 거의 3년 만에 2-3시간 마다 깨서 애 건네주고 받고 울면 또 일어나고 정말 어떻게 잠을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태어나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엄마 젖 잘 빠는 기특한 아이를 보니 졸리고 피곤한 것들을 다 잊어버리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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