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Too Long; Don't Read)
네이퍼빌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History of DuPage County : DuPage Roots에서 발췌, 번역했습니다. 네이퍼빌에 살고 계시지 않으면, 혹은 네이퍼빌에 살고 계시더라도 재미없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드디어 1900년대로 넘어왔습니다. 이 당시 인구는 2,600명 가량 되었으며 10년 후 3,400으로 급격히 증가합니다.
1900년대에는 네이퍼빌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등장합니다. 소방차가 이미 있었는데 첫 자동차가 등장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소방차와 같은 특수용도가 아닌 승용차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Naperville Clarion지는 스피드광에 대해 경고하는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1907년에는 Theodore Sachs의 감독아래 에드워드 요양소(Edward Sanatorium)가 문을 엽니다. 14개의 병상을 가진 이곳은 오대호 인근에서 결핵을 치료하는 첫번째 의료기관이었습니다. 1950년대 결핵 환자의 수요가 줄자 Edward 요양소는 종합병원인 Edward Hospital로 바뀌게 됩니다. 14개의 병상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160개가 넘는 병상을 가진 종합병원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Edward 병원까지 10분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역사가 깊은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에는 인구가 5,000여명까지 늘었습니다. 외식이 늘고, 유흥을 즐기고, 골프장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경기가 침체되었습니다.
1930년대는 무척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932년은 조셉 네이퍼가 정착한지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위해 Centennial Beach를 만들었습니다. 네이퍼빌 중심가에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아이들이 놀기에는 좀 깊고 미끄럼틀도 없어서 저희는 가지 않습니다만, 여름이면 수 많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입니다.
1940년대에는 인구가 5,280여명이 되었는데 그 중 800이 대학생이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2차 대전에 참전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도시의 크기가 6제곱 마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120여개의 단체들이 있었고 그 중 하나는 1849년에 생긴 프리메이슨입니다. 이 단체는 지금도 네이퍼빌에 있으며 네이퍼빌 다운타운에 가면 벽화도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학생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때 생긴 학교가 Central High School입니다.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로 큰 아이 무용 수업을 이 학교에서 듣고 있어서 자주 갑니다. 새로운 건물로 지었기 때문에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60년은 지리적으로 가장 크게 시의 크기가 늘어난 해였습니다. 약 1,500 에이커의 땅이 네이퍼빌로 편입되었습니다. 학교도 더 생기고, 우체국, 병원, 대학이 건물을 더 지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각종 연구소들의 설립이었습니다. 벨 연구소(Indian Hill Bell Laboratories, 지금은 노키아로 바뀌었습니다.), Northern Illinois Gas 연구소, Standard Oil 연구소 등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연구소들은 고속도로 변에 있어서 아웃렛 갈 때 가끔 보곤 합니다.
이상 1960년대까지의 네이퍼빌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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