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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리해고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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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장주 2017. 4. 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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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에 지금 회사로 첫 출근을 했으니 이제 곧 만으로 입사 5년이 됩니다. 하지만 5년 사이 정리해고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한 회사에만 계속 다녔는데 회사가 여러 번 팔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정리해고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제 경험을 한 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박사과정 하는 동안 시카고 외곽에 본사를 모토로라 연구소에 인턴을 가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여름 마다 인턴을 갔더니 "졸업하면 올래?" 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2011년 마지막으로 인턴을 끝내자마자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2012년 졸업을 했고 모토로라에 정직원으로 입사하게 됩니다. 입사하기 한 달 전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 완료를 발표합니다. 구글에 인수된 유튜브처럼 모토로라도 구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목적이 모토로라가 가진 특허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모토로라에 입사하여 미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모토로라는 무전기로 대표되는 모토로라 솔류션즈, 셋톱 박스와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모토로라 모빌리티가 있습니다. 제가 입사한 곳은 모토로라 모빌리티 입니다. 구글은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습니다. 


입사하고 한 달 쯤 지났을 때 였습니다. 일요일 밤 11시 경에 전체메일이 왔습니다. 메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월요일부터 정리해고를 시작한다.
  • 정리해고 대상자는 매니저로부터 연락을 받을 것이다.

이메일이 있고 30분도 안 되어서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그 동안 즐거웠고 이번주에 회사를 떠난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습니다. 그 직원은 뉴욕에서 원격 근무를 하던차라 정리해고 1순위였던 것입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매니저가 와서 어깨를 툭툭 칩니다. 저승사자가 와서 이름을 부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리해고 대상자라고 통보 받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정리해고가 있어서 놀랬을까봐 매니저가 와서 한 마디 해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1년이 지나니 구글은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셋톱 박스 부문과 휴대전화 부분을 나누어 각각 사장을 임명했습니다. 회사를 팔기위한 조치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결국 휴대전화 부문은 Lenovo에 매각했고, 셋톱 박스 부문은 Arris에 매각했습니다. 제가 속한 연구소는 셋톱 박스 부문이어서 이젠 Arris 직원이 되었습니다.


Arris에 인수되고 제가 속한 연구소는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나서 또 일요일 오후에 전체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연구소장님이 보낸 전체 이메일이었습니다. 매년 초에 연구소 목표 설정하는 날이 있는데 그 일정을 알리는 메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월요일에 꼭 참석하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월요일에 연구원들을 모아 놓고 연구소장님이 말을 했습니다. 


연구소는 오늘부로 해체합니다. 


나중에 연구소장님이 그러는데 정말 제가 사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취업 비자로 일하는데 해고를 당하면 법적으로는 그 즉시 미국을 떠나야 합니다. 보통 새 직장을 한 달 내외로 구하면 어느 정도 봐주기도 한다지만, 취업비자 소지자를 뽑는 회사는 제약이 더 많아서 구하는데 좀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집도 샀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집도 팔아야 해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각자 경력과 기술을 고려하여 다른 사업부로 배치된다고 합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인사과 직원이 호명을 합니다. 같이 들어가서 정리해고 통보를 받던가, 새로운 부서로 배치를 받습니다. 다행히 저는 새로운 사업부로 배치를 받아서 해고는 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팀에서 매니저는 새로운 팀으로 배치를 받지 못하고 해고를 통보 받았습니다. 연구원이야 개발자로 다른 부서에 갈 수 있지만 매니저는 이미 있는 팀에 갈 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같이 연구소에 있던 다른 연구원 2명과 매니저 한 명,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은 하나의 팀이 되어 다른 큰 팀의 일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오래곤 주에 큰 팀이 있고 그 팀의 일 중의 일부를 저희가 받아서 일을 해야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멀리 있는 팀이었기에 인정받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매니저가 와서 팀원들을 모으고 어제 있었던 회의 결과를 알려줍니다.


오레곤 팀은 매각되거나 분사 시킨다.

이제는 얼굴이 사색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영주권도 나왔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직장을 구할 수 있습니다. 작년 초 제가 속한 팀은 오레곤 팀 밑에 소속되었지만 시카고에 있는 다른 팀의 일도 같이 하다 보니 일종의 양다리를 걸치게 되었습니다. 아직 결정이 확실하게 나지 않았지만 시카고 팀에 소속되어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해고때 마다 살아남는 운이 계속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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